기억의 봉인

7화. 관측자의 흔적

CtrlCraft 2025. 4. 2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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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봉인] - 6화. 기억의 궤도 위에서

 

[7화. 관측자의 흔적]

The Seal of Memory — Ep.07 Key Art

 

진우는 노트를 품에 안은 채, 어두운 골목 끝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새벽의 서울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고, 틈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기운은 이미 감각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도시는, 기억하고 있어.”

중얼임과 동시에 노트가 반응했다.
표지가 미세하게 떨렸고, 첫 장이 스스로 열리며 새로운 페이지가 생겨났다.

『관측자의 고유 기억 기록이 시작됩니다』

글자가 스스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한진우 씨.”

뒤에서 서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검은 외투에 몸을 감싼 채 다가왔다.

“오늘부터는 내부로 들어갈 겁니다. 청동의 눈, 정식 접속자만 들어갈 수 있는 구간이 있어요.”

“그게... 본부 같은 곳이에요?”

“일종의 기록 보관소죠. 관측자와 관련된 기억들, 봉인된 정보들이 모여 있는 곳.”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그 눈동자 속에는 조금의 긴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당신 말고 또 한 명의 관측자가 있었어요.”

진우는 눈을 떴다.

 

을지로 지하 폐상가를 통과한 끝에, 서윤은 벽에 손을 얹었다.
봉인진이 푸르게 빛나며 회전했고,
이내 두께 1미터는 돼 보이는 강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은 생각보다 넓고, 생각보다 조용했다.
먼지 낀 천장등이 하나둘 켜지면서 어둠이 물러났다.

벽면엔 수백 개의 서랍이 정리되어 있었고,
중앙엔 기억 추적용 구조물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진우는 그 공간을 '기억의 도서관'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여기엔 관측자들의 기록이 저장돼요.
매번 틈에 들어갈 때마다 노트는 자동으로 그 흔적을 남기죠.”

서윤은 진우를 데리고 구조물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리고 노트를 가져다 대자, 중앙의 유리판 위에 빛의 선이 새겨졌다.

‘한진우 – 3회차 관측자’

그 아래, 새로운 이름이 함께 떠올랐다.

‘이서연 – 2회차 관측자 / 상태: 실종’

“이 사람은...?”

“전임 관측자. 당신 이전에 이계의 기억을 마주했던 사람.”

“지금은 어디에 있죠?”

“그 누구도 몰라요. 2년 전, 세 번째 틈에서 돌아오지 않았어요.”

 

진우는 유리판 위로 손을 뻗었다.
순간, 그 안에서 이서연이 남긴 마지막 기록 장면이 투영되었다.

지하철역. 폐차량 안.
불 꺼진 공간 속, 한 여성이 무언가를 노트에 기록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진우는 그 눈빛을 분명히 느꼈다.
자기처럼 무언가를 마주하고, 버티려 했던 사람의 눈.

“기억을... 잃기 전에 남깁니다.”

“이 문은 봉인이 아니라, 통로예요. 기억은 이계로 흘러가고 있어요.”

“누군가 이걸 읽는다면, 당신도 관측자겠죠.”

“...부디, 잊지 말아줘요.”

 

장면이 꺼지자, 진우는 말없이 손을 내렸다.

서윤은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아마 지금도 아니에요.”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노트를 꼭 쥐었다.

이제 그는 알고 있었다.
기억을 보는 자는 기록자가 되어야 한다는 걸.
기억은 잊히는 것이 아니라,
남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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