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낙인]

진우는 노트를 조심스럽게 덮었다.
표지 중앙의 새로운 문양은, 이전 것들과 다르게 미세한 열기를 뿜고 있었다.
그건 마치, 자신이 이제 단순히 기억을 ‘보는’ 자가 아닌,
기억에 ‘반응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증거 같았다.
“지금 당신은, 관측자에서 기록자로 넘어가는 중이에요.”
서윤이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진우의 눈빛에서 변화를 느낀 듯했다.
“뭔가... 새겨진 느낌이었어요.”
진우는 자신의 가슴 위를 살짝 눌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청동의 눈 거점 내부. 중앙 아카이브실.
기억 노트에서 발생한 반응을 분석하던 서윤은,
시스템에서 알 수 없는 봉인 계열의 파장을 감지했다.
“이건... ‘낙인’?”
기억 기록자의 일부가 특정 기억을 직면했을 때,
이계로부터 부여되는 표시.
마치 봉인과 계약 사이의 그 무엇.
그건 진우에게만 나타났다.
“이건 관측자 본인의 감정이 일정 기준을 넘었을 때 생기는 현상이야.”
서윤은 생각에 잠겼다.
진우는 단순한 관측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투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각인시키는 존재.
그것은 이계에서조차 드문 능력이다.
한편 진우는 자신의 노트를 분석하기 위해
보조 단말에 연결된 서가로 향했다.
시스템의 구조는 복잡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직관적으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문양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
그는 노트 표지의 새로운 낙인 모양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순간, 손끝이 뜨거워지며 단말이 작동했다.
‘접속자: 진우. 특별 승인 레벨 A 부여.’
진우는 놀랐다.
서윤조차 부여받지 못한 등급이었다.
그와 동시에 내부 모니터에 보안 문서 하나가 열렸다.
『봉인술사 – 대상자 이서연 : 잠정 판결 문서』
“이서연...?”
문서에는 그녀가 과거 금지된 기억을 기록했고,
일시적으로 봉인의 영향권을 벗어났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제3계 틈’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실종 처리되었지만,
내부에서는 ‘의도적 차단’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문장은 그 아래 있었다.
『관측자 진우 – 기록 연계 이력 확인됨』
진우는 숨을 멈췄다.
자신과 이서연의 기록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는 그녀를 모른다.
그러나 시스템은 이미 두 사람을 한 줄에 묶어두고 있었다.
“나는... 대체 뭐지.”
그는 혼란스러웠다.
기억을 보는 것도, 기록하는 것도.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각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기억의 잔상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어린 시절, 누군가와 나눈 짧은 대화.
사라진 이름, 사라진 목소리.
진우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이서연의 것이었는지, 혹은 자신의 것인지.
그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 채,
단말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그때, 단말에 경고등이 켜졌다.
『외부 틈 반응 감지. 위치 – 성산로 폐창고지대』
새로운 틈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진우가 처음 봉인 없는 공간을 마주하던 그 느낌과 비슷했다.
서윤이 급히 들어와 경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일반적인 틈의 반응치보다 훨씬 강해요.
이건 단순한 개방이 아니라, 확장에 가까워요.”
진우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이번엔, 내가 먼저 간다.”
그의 손엔 여전히 노트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 아래, 또 다른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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