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봉인

8화. 기억의 틈

CtrlCraft 2025. 4.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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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봉인] - 7화. 관측자의 흔적

[8화. 기억의 틈]

The Seal of Memory — Ep.08 Key Art

 

서울 외곽, 잊힌 전철역.
진우는 다시 그곳을 찾았다.

이서연의 마지막 기록에 언급된 장소.
청동의 눈 내부 기록에서도 ‘관측자 실종 지점’이라 명시된 곳.

낡은 플랫폼에는 먼지만이 쌓여 있었고,
출입문은 녹슬어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진우는 노트를 열었다.
이미 열린 페이지에는, 낯선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여기는 기억이 고여 있는 장소.
틈은 닫히지 않았고, 다만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됐어요?”

서윤이 물었다.
그녀는 봉인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등 뒤로는 최소한의 결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주위에는 기운 차단용 주술부가 깔려 있었다.

“응. 이번엔 내가 먼저 들어가 볼게요.”

진우는 단호했다.
그는 틈 속으로 향했다.

공기가 일그러지고, 시야가 뒤틀리는 듯한 느낌.
익숙한 감각이었다.

“기억 관측 모드, 진입.”

노트가 스스로 빛났다.

 

그가 눈을 뜬 곳은 기묘한 공간이었다.
하늘도 땅도 없는 곳.
모든 것이 기억의 파편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흐릿한 형체.
그러나 분명히 사람.
검은 셔츠, 흰 피부, 무표정한 얼굴.

진우는 그의 얼굴을 보자 숨을 삼켰다.

“...나?”

그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진우의 기억 속에서 분리된 ‘과거의 자아’.
이계에 의해 형상화된 감정의 조각.

“잊으려 했지.”

그가 말했다.

“도망쳤지. 넌 그걸 직면하려 하지 않았어.”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럼 이제도 마찬가지야?”

그림자 진우는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 손끝에 닿는 순간,
진우의 눈앞에 무수한 기억들이 흘러들어왔다.

어린 시절, 골목길, 죽음을 마주했던 순간.
가족의 장례식장.
홀로 남겨진 밤.
그리고 자신이 지워버린 감정들.

“이건... 전부 나였어?”

“네가 기억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들.”

진우는 무릎을 꿇었다.
머리가 울리고, 가슴이 저려왔다.
그러나 그는 피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할게.”
“다시 떠올리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갈게.”

그 순간, 그림자 진우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주변의 공간도 서서히 무너졌다.

 

“진우 씨!”

서윤의 목소리.
진우는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그는 다시 플랫폼 위에 있었다.

노트는 여전히 그의 품에 있었고,
표지에는 새 문양 하나가 추가되어 있었다.

관측 완료.

서윤은 물었다.

“이번엔... 뭘 봤죠?”

진우는 대답 대신 노트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진짜 기억은,
잊지 않은 게 아니라,
잊었다는 사실까지 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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