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봉인

3화. 청동의 눈

CtrlCraft 2025. 4. 2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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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봉인] - 2화. 죽은 공간의 소리

[3화. 청동의 눈]

The Seal of Memory — Ep.03 Key Art

“한진우 씨 맞죠?”

낯선 목소리가 허공에서 떨어졌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멈춰 섰다.
서울 구도심 골목,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폐역 근처.
철문 옆에는 검은 후드티를 눌러쓴 여성이 서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그녀는 마치 이전부터 거기 있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청동의 눈. 봉인술사, 한서윤입니다.”

그녀의 말투는 무미건조했지만, 말 끝에 실린 낯선 단어는 진우의 귀에 기묘하게 맴돌았다.
봉인술사?

“혹시... 그 CCTV 사건, 고시원 불꽃... 그거랑 관련 있어요?”

“있죠. 아주 많이.”

그녀는 허리를 숙여 녹슨 철문을 열었다.
쇳소리가 오랫동안 닫혀 있던 비밀을 열듯 삐걱거리며 울렸다.

진우는 망설였다.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냄새가 그 문 너머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먼지, 기름, 약간의 피냄새... 아니, 기억의 냄새였다.

“이쪽이에요.”

그녀는 계단 아래로 먼저 내려갔다.
진우도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계단은 이상하리만치 깊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무언가가 어깨 위에 눌려오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마치 서울의 뱃속 같았다.
오래전 폐쇄된 역사. 정차를 멈춘 채 썩어가고 있는 전동차 한 량.
문은 반쯤 열려 있고, 유리창엔 손바닥 자국.
벽에는 낡은 광고 포스터가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진우가 묻자, 서윤은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꺼내 바닥의 더러움을 쓸어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드러난 무늬.
푸른빛이 맴도는, 정교한 원형 문양.

“이건 봉인의 흔적이에요.
도시엔 이런 곳이 일곱 군데 있어요. 오래전부터 존재했죠.”

진우는 그 문양에서 이상하게 익숙한 감각을 느꼈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손끝이 저릿해졌다.

“저... 전 이걸 본 적이 있어요. 꿈에서.”

“꿈이 아니에요.
당신은 이미 이계에 접촉했어요.
당신이 본 건 잊힌 기억이에요. 아주 오래전, 누군가가 숨긴 진실.”


서윤은 노트 하나를 꺼냈다.
검은 가죽 표지, 중앙에는 흐릿한 청동 문양이 박혀 있었다.

진우는 직감했다.
이건, 고시원에서 깨어났을 때 손에 들려 있던 그 노트와 같은 것이었다.

“이건 당신 겁니다.”

“...네?”

“모양만 같다는 게 아니에요.
진짜로, 당신의 기억이 담겨 있어요.”

진우는 노트를 받았다.
손에 닿는 순간, 아주 오래전의 장면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낡은 한옥의 복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울고 있던 아이.
그리고 똑같은 문양이 새겨진 문.

“당신은 이계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기억을 보는 자, 관측자.”


진우는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느꼈다.
무언가가 점점 자신 안에서 각성하고 있다는 것을.

“청동의 눈은 오래전부터 이런 틈을 감시해 왔어요.
지금처럼, 봉인이 약해지고, 기억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움직입니다.”

진우는 숨을 들이켰다.
폐역의 공기는 차고 무거웠다.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 맺혀 있었다.

“왜 저죠?”

서윤은 아주 짧게, 그러나 또렷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여기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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