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봉인

2화. 죽은 공간의 소리

CtrlCraft 2025. 4. 19.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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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에 사는 진우는 과거 고시원 화재의 환영을 겪으며,
잊힌 기억을 목격하는 능력을 자각한다.
그는 이제 ‘기억을 보는 자’가 되었다.

불타는 복도 속 기억

 

서울은 과거를 지우는 데 능숙하다.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진 골목,
잊혀진 기억 위에 세워진 아파트,
그리고 누구도 찾지 않는 오래된 고시원.

그러나 기억은 종종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말이 없을 뿐이다.

진우는 알바를 마치고, 고시원 복도로 들어섰다.
시멘트 벽 너머로 얇은 문들이 줄지어 이어지고,
희뿌연 형광등 불빛은 피곤한 눈을 더욱 짓눌렀다.

“하아... 오늘도 기묘하네.”

그는 방 앞에 멈춰 섰다.
그러나 도어락에 손을 대기 직전,
복도 끝 어둠 속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 아직 안 죽었어...”

목소리는 낮고 떨렸으며, 여자였다.
진우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끝, 사용되지 않는 창고방이 있었다.

“...누구 있어요?”

그는 조심스럽게 그 방향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방은 굳게 닫혀 있었고, 내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불현듯, 벽을 타고 흐르는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우는 벽에 귀를 기울였다.

 

그 순간이었다.

‘후욱—’

타는 냄새. 연기. 그리고 붉은 불꽃.

눈을 뜬 진우의 앞에는,
몇 년 전 화재로 뉴스에 보도되었던 고시원 참사의 잔상이 펼쳐졌다.
벽이 타고, 사람들의 비명이 메아리치며,
연기가 폐로 스며들 듯 짓눌러왔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그는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굳은 듯 서서, 불길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붉은 연기 속에서 그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기억해줘...”

진우는 숨을 멈췄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연기가 폭풍처럼 몰아치고
불꽃이 눈앞을 덮었다.

 

순간—
현실로 돌아온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벽은 멀쩡했고, 연기도 없었다.
그러나 손끝은 여전히 뜨겁고,
가슴은 불에 그을린 것처럼 아팠다.

“뭐야, 이게 진짜...”

그는 천천히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불을 켰지만, 벽을 타던 그 소리는 여전히 귀에 맴돌았다.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 화면에는 알림 하나가 떠 있었다.

[네이버 뉴스 실시간 인기기사]
<3년 전 고시원 화재, CCTV 복원 통해 희생자 영상 일부 확인>

진우는 숨을 들이켰다.
그가 본 장면, 불타는 복도, 소녀의 얼굴, 그리고 마지막 목소리.

“기억해줘...”

그건 단순한 잔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기억의 조각’이었다.

 

그는 다시 복도에 나와 창고방 앞에 섰다.
이번엔 두려움 대신 의문이 앞섰다.

“왜 나한테 이런 게 보이는 거지?”

그러나 대답 대신, 복도 끝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닫힌 창문 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고,
진우는 문득 깨달았다.

이 도시는,
누군가의 과거를 품은 채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그 기억을
‘보는 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3화. 청동의 눈

[기억의 봉인] - 2화. 죽은 공간의 소리[3화. 청동의 눈]“한진우 씨 맞죠?”낯선 목소리가 허공에서 떨어졌다.진우는 본능적으로 멈춰 섰다.서울 구도심 골목,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폐역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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