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봉인

제13화: 틈의 안쪽에서

CtrlCraft 2025. 5. 2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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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는 틈 속에서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며,
자신이 전임 관측자 이서연과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한다.
기억은 그를 시험하기 시작한다.

 

진우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느꼈다.

오늘은 뭔가 다르다.

공기의 밀도, 창밖의 어스름한 색,

그리고 꿈속에서 들었던 이름. ‘서연.’

그 이름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억이 아니다. 아니, 이건…… 감정이다.’

그는 어제 기록실에서 본 문서의 구절들을 떠올렸다.

붉게 표시된 ‘이서연 실종 경위’,

그리고 마지막에 남겨진 모호한 한 줄.

"관측자는 기억에 저항할 수 없다."

한서윤이 아침 일찍 청동의 눈

기록실에서 진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꿈을 꿨다며?"
서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고른다.

"응. 이상했어. 내 기억이 아닌 것 같은데…

낯설지도 않아.

 

따뜻한 기억인데, 아득하고,

아픈 감정이 묻어 있었어."

"그게 네가 선택하지 않은 기억이야.

틈이 건드린 거지."

서윤은 오래된 지도를 펼쳤다.

 

서울 시내의 일부가 번지는 잉크처럼 붉은 원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건 단순한 틈이 아니야.

기억을 삼키는 구멍이야.

이 안쪽에서 뭔가가 우리의 기억을 재조립하고 있어."

"누가?"

서윤은 묵묵히 낡은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꺼내 트레이에 올렸다.

 

"전임 관측자, 이서연이 남긴 마지막 기록.

디지털 복원에 3개월이 걸렸어."

재생 버튼을 누르자,

 

낮게 울리는 숨소리와 함께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약 내가 사라진다면, 진우에게 이걸 전해줘.

그는 아직 자신이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곧 틈은 말을 걸 것이고,

기억은 입을 열 것이다."

 

진우의 눈이 커졌다. "……

이게 무슨 말이야. 나를 안다고?"

"그녀는 7년 전 사라졌어.

그리고 너는 8년 전,

관측자 후보로 선택되었지."

 

진우의 손이 떨렸다.

그는 무언가 중요한 연결 고리를 붙잡기 직전의 기분을 느꼈다.

기억은 언제나 가장 어두운 틈에서 시작된다.

그날 저녁,

그들은 서울 성북구의 폐가를 찾았다.

이곳은 최초의 틈이 열렸던 장소로 기록되어 있다.

벽에는 오래된 봉인 마법진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바닥은 기묘한 문양으로 얼룩져 있었다.

 

서윤은 촛불을 하나하나 켜가며 진우를 바라봤다.

"지금부터 너는 관측자 자격으로 이 틈을 통과할 수 있어.

다만… 안쪽에 있는 기억은 진짜일 수도 있고,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어."

"그럼 난 어떻게 그걸 구분해?"

"그건 네가 선택해야 해."

 

서윤이 마법진에 손을 대자,

바닥의 문양이 붉게 빛났다.

공기가 떨리고, 시간의 층이 벗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틈이 열린 것이다.

진우는 어둠 속으로 빨려들었다.

다음 순간,

그는 낯선 거리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하늘은 회색빛,

사람들은 그를 보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갔다.

‘여긴…… 과거야?’

골목 어귀에 서 있던 아이가 그를 바라봤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

더 어린 시절의,

아마도 잊고 있던 기억 속 자신.

"진우야, 기억나?

여긴 우리가 그 여자를 처음 만났던 날이야."

 

"……그 여자?"

"빨간 우산을 쓴 언니.

이름은 모르지만,

항상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지.

널 위해."

진우는 무심코 걸음을 옮겼다.

 

뇌가 저항하는 듯 아프게 욱신거렸다.

하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 골목 끝,

붉은 우산을 쓴 여자가 서 있었다.

눈동자는 따뜻하면서도 슬펐다.

 

“진우야. 난 네 기억이야.

그리고…… 너는 나를 잊으면 안 돼.”

진우는 입을 열지 못했다.

모든 것이 너무 익숙하고, 너무 아팠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진우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떤 기억을 본 거야?" 서윤이 물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

내가 잊어버린 사람."

 

그는 고개를 들었다. 눈빛은 변해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나, 이제 알아.

관측자는 기억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는 사람이야."

 

"좋아. 그럼 이제, 다음으로 갈 수 있어."

서윤은 작은 은빛 열쇠를 꺼내 진우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건 전임 관측자의 기록실로 가는 열쇠야.

이서연이 남긴 진짜 메시지는 아직 열리지 않았어."

그날 밤,

청동의 눈 중앙기록실에서 바닥이 열리고,

감춰졌던 고문서 하나가 드러났다.
그 위에는 단 한 줄만이 새겨져 있었다.

 

“기억은 봉인되지 않았다.

그저, 선택을 기다릴 뿐이다.”

진우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서울 곳곳의 ‘틈’에서 동시에 이상 현상이 감지되었다.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14화. 봉인의 균열

진우는 틈 속 기억과 마주하며 관측자로 각성하고,이서연의 경고를 통해 ‘기억의 봉인’이 무너지고 있음을 깨닫는다.서울 전역에 퍼지는 이상 반응 속,그는 결단한다. "그날의 틈, 기억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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