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봉인

12화. 소멸의 문턱

CtrlCraft 2025. 5. 1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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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는 실종된 전임 관측자 이서연의 흔적을 추적하며,
기억과 이계의 진실에 다가간다.
서울 곳곳에서 틈이 열리고,
새로운 위기가 시작된다.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진우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마치 열기처럼 흘러내렸다.
청동의 눈 본부로 복귀한 그는 곧장 분석실로 향했다.
성산로 폐창고에서 회수한 영상 기록과 틈의 파장 데이터를 대조하며,
그는 하나의 가능성에 다다르고 있었다.


“서윤 누나, 이거 좀 봐.”

진우가 손짓한 모니터엔 이계 틈의 파장이 일정 간격으로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쳐지는 그래프가 떠 있었다.


“이건... 무언가 외부에서 조작하고 있는 흔적이야.”

“혹은, 의지를 가진 존재가 내부에서 파장을 변조하고 있는 거지.”

서윤은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날 이후, 그녀는 틈을 바라볼 때마다 예감하고 있었다.
‘누군가’ 틈 너머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며칠 후,
진우는 ‘관측자 전용 기록 보관소’에서 오래된 명단 하나를 발견한다.
‘이탈 관측자’ 목록.
그중 눈에 띄는 이름 하나.


이서연 —
최종 확인: 미정 / 상태: 실종 / 기록: 불완전.


“서연... 그 이름, 어디서 들어봤는데...”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감쌌다.
문득 머릿속을 스쳐간 장면 하나.
아이였던 자신이 무언가를 바라보다 뒤돌아선 순간,
그림자 속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던 기억.
그 목소리는 따뜻하면서도 낯설었다.


그날 밤, 진우는 꿈을 꾼다.

이계의 바닥 없는 어둠 속,
그 안에서 그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릿한 실루엣.
그리고 속삭임.


“기억은 소멸하지 않아.
다만, 누군가가 그것을 원할 뿐.”


“누구야?”

“나는... 너와 같은 관측자였다.”



진우가 깨어난 건 새벽 세 시.
기록실에 무언가 달라진 점이 있다는 감각에 휩싸여 다시 그곳으로 달려갔다.
도착한 그곳엔 기록 봉인이 풀린 하나의 파편 영상이 있었다.


그 속엔 이서연이 있었다.
영상 속 그녀는 이미 관측자 복장을 벗고,
낯선 청동빛의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 문을 넘어간다는 건,
기억과 존재의 결계를 허무는 일이다.
나는 관측자가 아닌 존재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기억의 밖에서 역사를 지켜봐야 해.
진우야, 이 메시지를 본다면...
틈 너머의 ‘선택된 기억’을 조심해.”


서윤이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는 이계를 자발적으로 선택했어.
우리가 붙잡지 못한 과거를 선택한 거야.”


진우는 문득 확신했다.
자신이 이어받은 사명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왜 기억이 지워졌는가’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며칠 후,
서울 도심 여러 곳에서 동시에 틈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이번엔 틈 주변의 사람들 중 일부가 과거의 일을
‘선명히’ 기억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어떤 여자가 내게 기억을 보여줬어.
그녀는... 관측자처럼 보였어.”


진우는 서윤과 함께 서울 시청 지하에 숨겨진 비밀 지령실로 향한다.
그곳은 과거 ‘이서연’이 사용하던 관측자의 임시 활동지였다.


벽에 걸린 지도엔 서울 전역의 틈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고,
중심에는 커다란 붉은 점이 있었다.


“중앙도서관?”

서윤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곳에서 이계의 ‘핵심 기억’이 열린다는 건,
지금의 현실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야.”


진우는 마지막으로 지도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이젠 도망칠 수 없어.
기억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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