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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 11

11화. 도시의 틈

기억을 기록하는 자가 된 진우는 서울 전역에 확산되는 기억의 틈을 목격한다. 또 다른 관측자의 존재 가능성과 함께, 그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기억을 선택하는 자’로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진우는 서윤과 함께 성산로의 폐창고를 벗어나, 청동의 눈 거점으로 복귀했다.지하 복도로 이어지는 회색 벽면은 무표정했고,천장의 형광등은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이며 어딘가 불길한 리듬을 반복하고 있었다.그의 손에는 여전히 노트가 들려 있었다.이전보다 더 무거워진 감각.그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닌, 기록된 책임이 부여된 무게였다.“이제부터 당신은 ‘기록을 이은 자’예요.”서윤은 그의 앞을 걸으며 말했다.진우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언가가 바뀌었음을 느끼고 있었다.그 무게는 이제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운명의 일부..

기억의 봉인 2025.04.24

10화. 틈 너머의 진실

[기억의 봉인] - 9화. 낙인[10화. 틈 너머의 진실] 성산로 폐창고지대.한때 물류센터였던 공간은 지금은 버려진 철제 구조물과 벗겨진 콘크리트 벽만이 남아 있었다.바람조차 들지 않는 고요 속에서 진우는 서 있었다.그의 앞, 미세한 진동과 함께 공기가 일그러지며 틈이 형성되고 있었다.봉인 없는 틈.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진우를 주시하고 있었다.서윤은 결계를 설치하며 낮게 속삭였다.“이번 틈은 이전과 달라요. 이건 누군가가 ‘연 것’ 같아요.”“자발적으로요?”“네. 그리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진우는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틈을 통과하자, 공간이 뒤집혔다.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고,사방은 빛과 어둠이 얽힌 감각의 층으로 채워졌다..

기억의 봉인 2025.04.24

9화. 낙인

[기억의 봉인] - 8화. 기억의 틈 [9화. 낙인] 진우는 노트를 조심스럽게 덮었다.표지 중앙의 새로운 문양은, 이전 것들과 다르게 미세한 열기를 뿜고 있었다.그건 마치, 자신이 이제 단순히 기억을 ‘보는’ 자가 아닌,기억에 ‘반응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증거 같았다.“지금 당신은, 관측자에서 기록자로 넘어가는 중이에요.”서윤이 조용히 말했다.그녀는 진우의 눈빛에서 변화를 느낀 듯했다.“뭔가... 새겨진 느낌이었어요.”진우는 자신의 가슴 위를 살짝 눌렀다.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청동의 눈 거점 내부. 중앙 아카이브실.기억 노트에서 발생한 반응을 분석하던 서윤은,시스템에서 알 수 없는 봉인 계열의 파장을 감지했다.“이건... ‘낙인’?”기억 기록자의 일부가 특정 기억을..

기억의 봉인 2025.04.24

8화. 기억의 틈

[기억의 봉인] - 7화. 관측자의 흔적[8화. 기억의 틈] 서울 외곽, 잊힌 전철역.진우는 다시 그곳을 찾았다.이서연의 마지막 기록에 언급된 장소.청동의 눈 내부 기록에서도 ‘관측자 실종 지점’이라 명시된 곳.낡은 플랫폼에는 먼지만이 쌓여 있었고,출입문은 녹슬어 있었다.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진우는 노트를 열었다.이미 열린 페이지에는, 낯선 문장이 적혀 있었다.『여기는 기억이 고여 있는 장소.틈은 닫히지 않았고, 다만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됐어요?”서윤이 물었다.그녀는 봉인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등 뒤로는 최소한의 결계가 설치되어 있었고,주위에는 기운 차단용 주술부가 깔려 있었다.“응. 이번엔 내가 먼저 들어가 볼게요.”진우는 단호했다.그는 틈 속으로 향했다.공기가 일그러지..

기억의 봉인 2025.04.23

7화. 관측자의 흔적

[기억의 봉인] - 6화. 기억의 궤도 위에서 [7화. 관측자의 흔적] 진우는 노트를 품에 안은 채, 어두운 골목 끝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새벽의 서울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고, 틈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기운은 이미 감각에 익숙해지고 있었다.“도시는, 기억하고 있어.”중얼임과 동시에 노트가 반응했다.표지가 미세하게 떨렸고, 첫 장이 스스로 열리며 새로운 페이지가 생겨났다.『관측자의 고유 기억 기록이 시작됩니다』글자가 스스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한진우 씨.”뒤에서 서윤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녀는 검은 외투에 몸을 감싼 채 다가왔다.“오늘부터는 내부로 들어갈 겁니다. 청동의 눈, 정식 접속자만 들어갈 수 있는 구간이 있어요.”“그게... 본부 같은 곳이에요?”“일종의 기록 보관소죠. 관측자와 관련..

기억의 봉인 2025.04.22

6화. 기억의 궤도 위에서

[기억의 봉인] - 5화. 봉인 밖으로 흘러나온 것들 [6화. 기억의 궤도 위에서] 진우는 노트를 펼칠 때마다 손끝이 저릿했고,페이지마다 묻은 듯한 그림자들이 그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마치 과거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이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야...”진우는 벽에 기대앉아 노트 첫 장을 다시 펼쳤다.종이 위에는 정갈한 손글씨가 남겨져 있었다.『관측은 반복된다. 그러나 반복은 동일하지 않다.이계는 기억의 흐름에 따라 형태를 바꾼다.기억을 보는 자는 흐름을 읽고, 흐름에 따라 길을 결정짓는다.』그 문장을 읽는 순간,그의 뇌리 깊숙한 곳에서 어딘가 딸깍 하고 스위치 하나가 켜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고, 진우는 서윤과 함께 청동의 눈 임시 거점으로 향했다.장소는 을지로 지하 쇼핑센터의 폐쇄구역..

기억의 봉인 2025.04.21

5화. 봉인 밖으로 흘러나온 것들

[기억의 봉인] - 4화.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면 [5화. 봉인 밖으로 흘러나온 것들] 꿈은 아니었다.그러나 현실도 아니었다.진우는 자신이 걷고 있는 바닥이 낡은 나무라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몇 초가 걸렸다.미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 창호지에 새겨진 햇살 무늬,그리고 불규칙하게 울리는 시계의 '똑딱' 소리.그는 어느 오래된 한옥 안에 서 있었다."이곳은... 어디지...?"주위를 둘러봤다.복도는 길고 정적에 잠겨 있었다.벽에는 오래된 병풍이 펼쳐져 있었고,벽 너머에서는 가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스쳤다.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한 발, 또 한 발.그는 어딘가에 이끌리듯 걷기 시작했다.그러다 복도 끝의 작은 마루 위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았다.그 아이는 고개를 들고 있었다.눈동자는 짙은 검은색.그러나 ..

기억의 봉인 2025.04.20

4화.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면

[기억의 봉인] - 3화. 청동의 눈 [4화.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면] 기차는 정차하지 않았다.폐역의 어둠 속을 통과하는 그림자, 그건 오래전에 잊혀졌어야 했던 '기억'의 잔해였다.진우는 전동차 안에 서 있었다.언제 들어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어딘가 어긋난 시간 속, 그는 창밖으로 흐릿한 플랫폼을 응시했다.노란 조명 아래, 의자 하나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소년이었다.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묻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낡은 교복, 긁힌 무릎,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입술.진우는 본능적으로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민혁...?”그 순간, 소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공기에서 짧은 정적이 흘렀고, 곧바로 플랫폼 전체가 서서히 일렁였다.마치 물속처럼, 현실이 흔들리고 있었다.소년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잔상이..

기억의 봉인 2025.04.20

3화. 청동의 눈

[기억의 봉인] - 2화. 죽은 공간의 소리[3화. 청동의 눈]“한진우 씨 맞죠?”낯선 목소리가 허공에서 떨어졌다.진우는 본능적으로 멈춰 섰다.서울 구도심 골목,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폐역 근처.철문 옆에는 검은 후드티를 눌러쓴 여성이 서 있었다.어두운 조명 아래, 그녀는 마치 이전부터 거기 있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누구세요?”“청동의 눈. 봉인술사, 한서윤입니다.”그녀의 말투는 무미건조했지만, 말 끝에 실린 낯선 단어는 진우의 귀에 기묘하게 맴돌았다.봉인술사?“혹시... 그 CCTV 사건, 고시원 불꽃... 그거랑 관련 있어요?”“있죠. 아주 많이.”그녀는 허리를 숙여 녹슨 철문을 열었다.쇳소리가 오랫동안 닫혀 있던 비밀을 열듯 삐걱거리며 울렸다.진우는 망설였다.그러나 어딘가..

기억의 봉인 2025.04.20

2화. 죽은 공간의 소리

고시원에 사는 진우는 과거 고시원 화재의 환영을 겪으며, 잊힌 기억을 목격하는 능력을 자각한다. 그는 이제 ‘기억을 보는 자’가 되었다. 서울은 과거를 지우는 데 능숙하다.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진 골목,잊혀진 기억 위에 세워진 아파트,그리고 누구도 찾지 않는 오래된 고시원.그러나 기억은 종종 사라지지 않는다.단지, 말이 없을 뿐이다.진우는 알바를 마치고, 고시원 복도로 들어섰다.시멘트 벽 너머로 얇은 문들이 줄지어 이어지고,희뿌연 형광등 불빛은 피곤한 눈을 더욱 짓눌렀다.“하아... 오늘도 기묘하네.”그는 방 앞에 멈춰 섰다.그러나 도어락에 손을 대기 직전,복도 끝 어둠 속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 아직 안 죽었어...”목소리는 낮고 떨렸으며, 여자였다.진우는 걸음을 멈추고 ..

기억의 봉인 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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